카레이도스타(Kaleido Star)는 투니버스를 통해 처음 봤던 작품이었다. 처음엔 한일 양국이 함께 작업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OST에 슈가가 참여했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지만 이내 순수하고 밝은 꿈을 향해 고난을 헤쳐나가는 소라와 카레이도 스테이지에서 함께 부딪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덕분에 꾸준히 재밌게 봤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런 카레이도스타의 OVA 한편을 뒤늦게 봤다. (난 왜 늘 늦어지는 걸까나..)
이번 작품의 부제는 Legend of Phoenix로 소라와 레이라의 환상의 무대 이후 브로드웨이로 떠난 레이라와 카레이도 스테이지에 남은 소라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레이라의 비중이 좀 더 많아서 더 좋았다.^^ 사실 일어로 처리되는 레이라의 목소리는 조금은 싫었다. 내가 기억하는 레이라는 성우 박경혜님의 목소리였으니... 아무튼 이번 편은 레이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피닉스를 연기해야 하는 그녀.. 하지만 자신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무작정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새롭게 태어난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한편 카레이도스테이지의 소라도 피닉스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그녀도 자신의 피닉스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을 품고 있던 그때.. 레이라의 잠적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선 소라는 그녀를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무작정 시작한 자전거 여행. 처음해보는 서툰 여행에 목적도 없이 달리는 레이라. 언제나 강하게 자신의 삶을 견지했던 그녀였지만 사실 그녀에겐 울보였던... 세상에 의지하고 싶었던 소녀 시절이 있었다.
어린시절 그녀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 의지하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책망과 후회로 스스로 강해지기로 마음먹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눈물짓지 않도록 자신을 애써 다그쳤다. 강해지리라. 그렇게 그녀 안에 남은 트라우마는 외면의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과 부딪치도록...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삶은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안겨줬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빈틈을 만들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했을 그녀에게 세상이 내미는 손길을 순순히 받아드릴 마음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이라를 쫓는 소라 일행도 힘든 여정이긴 마찬가지.. 소라는 스스로의 피닉스도 찾지 못하는 것도 고민하고 레이라도 걱정해야 했다.
레이라, 소라.. 서로 과거의 자신을 그리고 과거의 서로를 회상하며 끊임없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진다. 첫 만남.. 라이벌에서 친구로.. 동경의 대상에서 뛰어 넘어야 할 벽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그리고 여행길에 만난 이들을 통해 고민의 끝에 접근해가는 레이라와 소라... 여행은 그렇게 둘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소라가 카레이도스타를 꿈꾸며 미국으로 향하던 때 레이라는 카레이도 스테이지의 정점에선 스타였다. 평범하기만 한 꿈만 컸던 소라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한 아우라로 무대를 휘어잡았던 레이라.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소라는 성장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레이라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된다.
동경의 대상에서 경쟁자가 된 둘은 그렇게 무대를 놓고 치열한 오디션 대결을 펼쳤었고 서로를 자극하는 강한 자극제가 되어 서로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렇게 라이벌이었던 둘은 친구가 되어 간다.
환상의 무대를 함께 연기하며 둘은 강한 이끌림과 더없는 친근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한명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또 한명은 카레이도 스테이지에서...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에 감싸옇을때 불안감과 무력함에 빠져들때마다 강력하게 서로를 찾게되고 의지 아닌 의지를 하게 된다. 어쩌면 레이라와 소라는 영혼의 반려자.. 소울메이트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닉스는 중동에서 전해오는 전설의 새로 삶의 끝이 다가오면 둥지에 불을 붙여 그 불안에서 자신을 태우고 죽어간다고 한다. 허나 이내 다 타버린 그 불안에서 새로운 피닉스가 태어나게 되는데 이런 피닉스의 삶을 죽음과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머니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의 영속성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 OVA에서 등장하는 피닉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시절 레이라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피닉스 이야기 때문에 피닉스를 연기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얘기했지만, 어쩌면 피닉스는 지금까지의 강함만으로 세상과 맞서려 했던 레이라가 이전의 자신을 태워내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르겠다. 과거로의 회귀... 진실한 자신을 향하는 걸음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옥죄고 있는 자신이라는 굴레를 불태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피닉스가 불꽃으로 자신을 태우고 그 재안에서 새롭게 어린 피닉스로 부활하는 것처럼...
소라의 피닉스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카레이도 스테이지에서 처음부터 레이라를 모델로 달려왔다. 자신의 앞에서 꿈이 되어준 그녀와 때론 부딪치고 상처주면서도 그녀에게서 이어받은 카레이도 스테이지를 훗날 새로운 카레이도스타에게 물려주는 임무도 넘겨 받았다. 때때로 레이라에게 의지하고 싶어지고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소라. 어쩌면 소라에게 레이라는 다른 의미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레이라를 배우고 그녀를 따르며 어느새 넘어서는... 그리고 새로운 이에게 자신이 받아온 것을 가르치고 이끌며 그 사람이 홀로 설때까지 함께 해주는 것처럼... 삶의 이어짐은 그렇게 피닉스의 몸짓으로 그녀에게 남은 것 같다.
그 둘의 꿈이... 미래가 서로를 통해 열렸을 때 Legend of Phoenix는 아름다운 결말로 향했다. 이 작품은 50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도 담백한 편이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분명해서 기분 좋게 그 둘의 여행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고통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요소가 되지만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내 경우만 봐도...-_-)
하지만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과거의 자신을 태우고 새로운 꿈에 불을 붙일 수도 있으리라. 꿈까지 향하는 길은 언제나 먼 법이지만 함께 걸어갈 누군가가 있다면 그 끝에 이르는 것이 조금은 쉽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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