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역사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로 때론 깊이 있게 때론 우회적으로 사회를 비틀며 통렬한 재미를 던지는 애니메이션
'심슨가족(The Simpsons)'.
심슨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품고 있는 내게 심슨가족은 때때로 금과옥조 같은 메시지를 던져주곤 하는데 얼마전 문득 그 중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요리 평론가 호머 심슨의 이야기...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게 호머가 요리 평론가로 일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그렸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날 바트와 리사의 신문사 견학에 회사까지 땡땡이치며 따라나선 호머 심슨. 놀라운 미각과 후각을 가진 덕에 우연찮게 신문사 요리 평론가 자리를 꿰차게 된다. 글은 못쓰지만 일단 먹기는 잘하는 그였던지라 대필가 리사와 함께 콤비로 요리 평론가로 나서는데 먹으면 돈을 주는 이 새로운 직업에 그는 무척이나 큰 매력을 느끼며 매번 요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소파 밑에 떨어져 있는 조각 피자에까지 일단 음식이라면 높은 점수를 줄 정도로 후덕했던 그의 긍정적인 식당 평가가 신문을 장식하기 시작하면서 호머의 주변 사람들은 먹는 즐거움을 찾게 됐다고 즐거워 하지만 문제는 매사에 긍정적인 호머의 평가가 불쾌했던 또 다른 평론가들.
TV 평론가, 농업용품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들은 호머의 호평으로 가득한 평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들에게 평론이란 비난에 가까운 비판과 독설로 뭉쳐진 말장난에 가까운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에 혹~하는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으니 호머의 달달하기만한 음식 평가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위 그들은 업계 선배라는 입장에서 모름지기 평론가라면 호평만 해서는 안된다고 호머를 자극하고 결국 한 없이 얇은 귀를 자랑하는 호머는 순식간에 혹평과 비난으로 일관된 식당 평가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어제까지만해도 하나하나 모두 만족스럽다고 말했던 음식들에 이제는 비난과 질타를 퍼붓기 바쁘다. 어떤 식당이든 음식이든 한없는 애정을 가지던 극 이제는 모든 음식이 별로라고 헐뜯기 시작한다. 소위 주변의 진짜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생각까지 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집에서 아내인 마지가 해주는 요리에도 이제는 별로라며 독설을 던지는 그.
요리 평론가로서의 자신의 영향력과 평론가라는 직업의 특성을 결부시켜 자신은 독설을 퍼부어도 된다고 자만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쯤되자 결국 리사와도 결별하며 몰락이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그의 이유없는 트집에 코너로 몰린 스프링필드의 식당 주인들.결국 호머를 죽이려는 음모까지 세우게 된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던 음식에 대한 '맛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던 호머가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이 에피소드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특히 소위 말하는 평론가들의 시선을 읽어내는데 도움이 됐다.
어줍잖은 글쓰기를 해가면서...
글쎄 심슨가족이 미국의 미디어 평론가들에게 비난을 받아서 보복성으로 이런 에피소드를 준비하진 않았을테고...^^ 아마도 미국의 평론가들의 특권 의식 같은 걸 슬쩍 비틀고 싶었던 모양이다. 왠지 독설을 남발하면 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이들에게 가볍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는 미디어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수 많은 평론가들의 글을 읽곤 한다.
때때로 그들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평가받는 대상을 칭찬하기도 하고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읽는 입장에서는 둘 중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시선을 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그들을 흉내내는 듯한 글을 직접 쓰면서 계속 느끼고 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좋은 말만 해줄 수도 없는 그렇다고 비난만 할 수도 없는 아니 그러고 싶지 않은 중립의 어디 쯤에 한없이 다가가려고 생각은 하지만 이미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 사이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글이 되기 일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애매한 글을 쓰면서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나친 독설이나 비난은 피하자는 간단한 것으로 이왕이면 대면하고 있지 않은 상대의 감정을 상하는 글은 쓰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이유있는 비판을 피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블로고스피어를 돌고도는 거침없는 독설은 보는 쪽이나 쓰는 쪽 모두에게 그리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기에 지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디어나 블로고스피어를 살펴보면 때때로 독설은 더 없이 큰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똑같은 말이나 생각도 독설을 섞어 강하게 표현하면 좀 더 빨리 눈에 띄고 많은 공분을 일으키기도 하니 효과는 만점일 수 있지만 대체로 그런 독설은 또 다른 앙금을 상대방에게 남기게 되고 종종 사안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잃게 만든다.
설령 그 때문에 내가 쓰는 글들이 말랑해져 버린다해도 내가 읽어서 마음이 편하고 타인이 읽었을 때도 마음이 편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지켜갈 예정. 그래서 앞으로도 이 블로그의 글들은 말랑할 듯 하다.-_-;;
장황하게 써놨지만 호머 심슨이 그랬듯 나도 태생이 말랑한지라 독설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만 한 호머 심슨의 엄지 손가락 9개 평가는 내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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