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왕과 사는 남자, 유배된 단종 노산군과 엄흥도의 이야기. 그리고 시대정신

N* Culture/Movie

by 라디오키즈 2026. 2. 13. 07:00

본문

반응형

지난 1월 13일 제가 즐겨 보는 이강민의 잡지사에서 매주 화요일에 우리 역사를 읽어주는 박광일 선생님이 흥미로운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박광일 선생님은 한국사 전문이시니 당연히 영화도 우리의 역사와 관련된 얘기였는데요.

 

 

그때 소개된 건 2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던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 하면 내시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번 영화는 영월 청룡포로 유배간 단종과 그와 함께 살았던 엄흥도와 관련된 얘기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었죠. 그렇게 흥미롭게 방송을 보고 개봉하면 한 번 봐야겠다 했다가 지난 2월 7일 토요일에 극장에서 보고 왔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영화로 알고 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드셨더라고요. 이미 대중이 결말을 아는 이야기에 대중이 잘 모르던 이야기, 그리고 상상력을 한스푼 더해서 익숙한 듯 새롭게 톺아보게 만드는 힘.@_@b

 

단종과 그와 살고자 했던 엄흥도 이야기

 

 

 

어렴풋이 알고 있던 단종의 유배 이야기에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걸 영화 시작 부분에 언급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애절한 사연 덕분에 단종은 꽤 친숙한데도 승리자(?) 세조가 아닌 단종의 모습이 영화로 그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유배를 간 단종의 이야기라니 무거운 영화겠구나라는 막연한 상상은 주연이 유해진이라는 걸 안 순간 조금 풀어지긴 했는데요. 대신 아, 이 영화 초반에는 유쾌하다가 비극적으로 마무리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단종의 최후가 비극적이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줄거리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공식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계유정난이 조선을 뒤흔들고 어린 왕 이홍위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오게 해야지”. 한편,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먹고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촌장이 부푼 꿈으로 맞이한 이는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였다.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으로서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홍위가 점점 신경 쓰이는데… 1457년 청령포,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 <왕과 사는 남자>

 

- 스포일의 가능성이 있으니 아직 왕과 사는 남자를 보지 않으셨다면 주의하세요. -

 

반응형

12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17살에 세상을 떠난 단종의 이야기. 13살 때 숙부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사육신의 모의가 발각되어 단종이 위기에 몰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요. 단종의 우울한 출발과 달리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팍팍하기만한 광천골을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양에서 유배 내려오는 양반을 기다립니다. 그 양반을 지렛대 삼아 마을을 부흥시킬 야무진 꿈을 꾸면서요. 이 지점이 영화적 상상의 펼쳐지는 지점 같은데. 예전에 tvn의 렛츠고 시간탐험대에서 본 유배 생활은 참담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서로 유배온 양반을 받겠다고 타툴 일도 없을 듯한데. 그런 현실적인 얘기 대신 영화는 유배 온 양반과의 공존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려고 했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지만, 어우렁더우렁 모여사는 광천골 주민들에게 내려온 수염도 안 난 소년 노산군 이홍위의 어그러진 출발 이후 서로가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일상을 보여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구멍 없는 배우들의 호연

 

아직 개봉한 지 얼마 안 돼서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줄거리를 풀면 안 될 듯해서 여기서 멈추기로 하고요. 대신 좀 더 흐릿하게 소개를 이어가보면 영화는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되는 단종의 유배와 훨씬 가벼운 분위기로 엄흥도를 위시로 한 광천골 사람들의 마을 부흥기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막혀 충돌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요. 영월 청령포에 유배온 노산군 이홍위의 아슬아슬한 첫 만남부터 엄흥도의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진심이 통하면서 희망을 찾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들을 억누르는 유배 상황과 단종의 죽음으로 흐르는 역사적인 사건까지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단종과 엄홍도, 광천골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적 판타지에 가까운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영화적 상상 위에서 엄흥도를 연기한 유해진의 원맨쇼에 포복절도하다가 박지훈이 연기한 칼끝에 선 듯한 노산군이 처한 운명이라는 답답함을 함께 느끼다 보면 이야기가 풀려가는 식이죠. 이렇게 어딘지 익숙한 듯 판타지인 듯한 영화를 이끄는 배우들의 연기는 주조연 할 것없이 좋았습니다. 이홍위와 엄흥도에 공감하게 하는 것 역시 그런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었고요.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단종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 흔히 생각하는 세조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로지 왕이 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의 자리를 찬탈한 세조가 단종의 반대에 서있어야 할 듯하지만, 영화에서 단종과 맞서는 인물은 그런 세조를 실질적으로 조종한 한명회. 유지태가 한명회 역할을 맡았는데요. 드라마 등에서는 한명회가 못생기고 덩치도 작았던 걸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당시 기록에 따르면 칠삭둥이로 태어났음에도 키가 크고 잘생겼었다고 하니 기골이 장대한 유지태가 맡은 한명회가 더 찰떡인지도 모르겠네요. 실제 역사에서도 한명회는 야심이 많았던 수양대군의 책사가 되어 계유정난을 이끌고 반대파를 무참히 죽여가며 세력을 공고히 했는데, 영화 속에서도 그의 카리스마는 대단해서 유배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금씩 성장해 가는 단종을 압박하며 싹을 자르려는 호적수로 영화의 무게감을 잘 살려냅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손아귀에 놓인 이홍위와 엄흥도를 안타깝게 보는 정도를 넘어서 두려움이 마음 속에 스멀스멀 피어나게 할 정도로요.

 

 

단종, 엄흥도의 삶에서 만난 뜻밖의 시대정신

 

영화의 엔딩이기도 한 단종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상황에 몰려 자살한 것처럼 표현되어 있으나 그 외의 민간기록에는 사약을 거부한 후 죽임을 당한 것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많고, 또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영화에선 이 부분도 실록과 민간기록의 어딘가의 지점에 발을 딛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찬찬히 따라가시면 되실 겁니다. 암울할 거라 생각하고 조마조마하게 시작했던 영화 초반, 유해진의 등장 이후 점점 좋아졌던 기분이 엔딩으로 향할수록 무거워지다 못해 차분히 가라앉고 슬픔이 밀려들지만,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단종의 안타까운 최후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으니 슬픔을 넘어 그 안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왜 지금 나왔을까 하는 건 숙부인 금성대군에게 단종이 보낸 편지에서 읽어낼 수 있거든요.

 

더보기
숙부님, 저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유배자가 아닌 역사의 증언자로서 숙부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성공한 역모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면 앞으로의 조선은 창칼을 앞세운 피비린내 나는 난이 수십 년 수백 년 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거사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 했던 우리가 목숨을 걸고 저항하려 했다는 기록이 후대에 전해질 것입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유, 부정한 내란에 우리가 맞서야 하는 이유가 어찌 이리 담백하게 담겼을까요. 단종의 유배 이야기에서 이런 시대정신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맞닿아 있어서 더 좋았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였습니다.@_@/


 

왕과 사는 남자 – Daum 검색

Daum 검색에서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최신정보를 찾아보세요.

search.daum.net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