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를 의학 드라마로 분류하는게 맞을까?
병원을 배경으로 외과의들의 모습을 담는 드라마이니 의학 드라마가 분명한데도...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가 단순한 의학 드라마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막 인턴을 시작한 메레디스 그레이와 4명의 인턴을 중심으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는 그레이 아나토미는 전형적인 의학 드라마와는 다르게 인물들간의 연애사를 강하게 어필하면서 의학과 로맨스라는 소재를 잘 버무리고 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등장인물들...
원나잇 스탠드였던 이가 병원에서 자신의 상사가 되어버리는 메레디스나 그 주위를 맴도는 조지 등 인물들은 서로의 다양한 사정을 가지고 탄탄한 드라마를 이어가고 있다. 아래는 그레이 아나토미속 등장인물에 갖고 있던 생각과 극중 모습을 짧게 코멘트로 남겨봤다.
메레디스 그레이. 작품의 타이틀을 책임지고 있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다. 인턴으로 낯선 시애틀 생활을 시작했고 하루밤을 보낸 뇌 전문의 셰퍼드와 그의 부인 애디슨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유명 외과의 어머니를 둔 덕에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었지만 실력있는 의사로 애정사 말고는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캐릭터.
데릭 셰퍼드. 부인이 자신의 친구랑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후 뉴욕의 개인병원을 버리고 시애틀로 옮겨온 뇌전문 외과의. 일에선 프로지만 사랑에선 메레디스와 애디슨 사이에서 헤매는 조금은 우유부단한 남자. 그러나 따듯하고 지적이며 로맨틱한 모습도 어필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양.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연기한 크리스티나는 스탠퍼드 출신의 재원으로 일등이 아니면 성이 차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주변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일에만 매달리는 타입. 그렇지만 심장전문의 버크와 사랑에 빠지기도... 왠지 버크가 그 분야의 최고이기에 선택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1등에 목마르다.
조지 오말리. 호빗을 닮은 약간은 귀여운 외모에 치밀함보다는 인간적인 실수가 돋보이는 인턴. 메레디스와 룸메이트로 처음부터 그녀를 흠모해왔다. 모든 여자에게 상담역이 되어줄 수 있을만한 이야기 상대지만 비밀을 오래 지키지 못하는 등 잦은 에피소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지 스티븐스. 불우한 어린시절을 뒤로하고 모델로 번돈으로 공부하여 외과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미녀(?). 메레디스, 조지와 함께 룸메이트로 어울려 다니지만 가끔 환자에게 지나친 감정을 갖는 것이 문제다. 감정적인 성격 때문에 큰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역시 바람잘날 없는 캐릭터.
알렉스 카렙. 반항아적 분위기를 품기는 외모에 실제로 여러가지 트러블을 일으키는 SGH의 악동. 이지 등 몇몇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는 등 제법 카사노바 같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성격적인 결함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음. 이지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미란다 베일리. 그녀의 별명은 나치. SGH의 레지던트로 인턴 5인방을 진두 지휘한다. 작품의 초반에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냉철한 모습의 조련사 같은 풍모를 보이더니 출산 후 조금씩 인간으로서의 빈틈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내에서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무척 매력적이다.
프레스톤 버크. 심장 전문의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인물. 차기 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셰퍼드와 대립(이라기 보다는 친구)하는 관계로 인턴인 크리스티나와 사랑에 빠진다. 요리도 잘하고 악기에도 재능이 있는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캐릭터.
리처드 웨버. SGH의 외과 과장으로 병원을 이끄는 정점에 선 인물. 자신의 일에 집착하는 프로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폭넓은 친화력으로 좋은 의사들을 모으는 재능도 뛰어난 듯. 젊었을 때 메레디스의 어머니와 선을 넘었던 듯...
애디슨 몽고메리 셰퍼드. 셰퍼드의 부인으로 역시 뛰어난 전문의. SGH의 의뢰로 시애틀에 왔다가 아예 눌러 앉은 케이스. 메레디스와 팽팽한(?) 삼각관계에 놓여있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는 삼각관계다. 하지만 그녀도 프로. 성격이나 됨됨이도 큰 문제는 없는 인물이다.
의학 드라마 측면에서의 매력...
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SGH)를 공간으로 인턴과 레지던트, 전문의의 얽히고 섥힌 관계와 함께 병원을 찾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준다.
본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 병원인 탓에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은 언제나 드라마의 좋은 소재였다. E.R이 그랬고 종합병원도 그랬으며 그레이 아나토미도 그들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보다 한층 디테일한 질병과 치료 방법의 묘사와 함께 저마다 독특한 사정과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는 배가된다.
예를 들어 기차 탈선사고로 기둥에 몸이 끼어 들어온 남녀나 뒷마당에서 바주카에 맞아서 들어온 환자 등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그런 환자들이 끊임없이 출연해주시니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등장인물들의 치료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상황을 타게하려는 의사들의 노고까지... 이렇게 보면 그레이 아나토미는 정통 의학 드라마라고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의학 드라마에서 한발짝 거리를 두면...
그런가 하면 그레이 아나토미속 인간관계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띈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다가도 한순간에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진척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후퇴하길 반복하는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 뻐꾸기를 날리기 바쁘고 파트너도 끊임없이 바뀌며 때때로 일보다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 정도되면 이게 의학 드라마인지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드라마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종합병원 같은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그레이 아나토미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연애사는 이야기의 감동을 반감시킨다는 오해를 품게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레이 아나토미를 제대로 봤다면 그런 생각을 할리는 없지만 혹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을 구하는 의사들의 숭고한 모습만 보고 싶었다면 내내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 그레이 아나토미에 조금은 실망을 했을지도...
개인적으로는 그레이 아나토미가 내 눈에 띈 건 수술에 굶주린 인턴들 때문이었다.
5명의 인턴은 어떻게든 수술실에 들어가기 위해 애쓴다. 물론 이는 실전에서 수술방법 같은 귀중한 정보를 학습하기 위함이라는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간택받아 수술에 들어가는 동료를 질투하는 모습은 의사도 인간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자신들과 같은 외과의를 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이지만 환자의 몸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그들의 정신 상태는 여전히 인간의 범주에서 머물고 있다. 더욱이 바람핀 아내에 분노하거나 허전한 마음을 술집에서 만난 아무나와 풀어대는 모습 등은 때때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애처롭게 만들 정도랄까.
완소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숙련된 프로의 모습으로 그려지던 의사들의 시대는 갔나보다.
병원 내의 권력 싸움에 몸 바치던 하얀 거탑 속 장준혁부터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심하고 때로 그릇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의사들이 그려지는 그레이 아나토미까지...
시청자들은 어느새 머릿속에 박재처럼 남아있는 구시대적인 인물형보다는 현실적인
(그래서 때로는 실망을 하더라도) 인물들이 숨쉬는 드라마를 바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레이 아나토미도 그런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매 에피소드의 시작과 끝에 화두처럼 던져지는 나레이션이 주는 메시지도 많이 공감되는 터라... 시즌 1, 2, 3을 몰아 보고 있는 중이다. -_- 폭 빠졌다고 할까나...
아... 그보다 처음 꺼냈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보면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학 드라마가 맞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의학 드라마도 아닌 반짝거리는 정말 매력적인 의학 드라마다.^^
PS. 메레디스 = 레이첼, 크리스티나 = 모니카, 이지 = 피비, 조지 = 로스, 알렉스 = 조이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들과 왠지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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